놓아버려야 하는 때
스무살 때는 몇달동안 농성장에서 살며 하루종일 데모만 한 적도 있었고, 수원, 천안, 아산 남양주 등등 지하철이 통하는 데면 어디나 다 연대하러 다니고 데모하러 다녔다. 그러면서 가투(가두투쟁), 폭투(폭력투쟁), 농성, 연좌, 노숙, 기자회견, 회의, 세미나... 별걸 다 했다. 새벽 네시부터 데모하기 시작해서 핫식스 먹고 다음날 오전까지 계속 한 적도 있었고, 늦가을에 며칠을 침낭 하나만 가지고 노숙해서 편도선염 때문에 열흘동안 방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 적도 있었다. 무슨 고생을 사서 하나 싶은데, 그때는 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 즐거웠다.
그러면서 못 볼 꼴도 참 많이 봤다. 학교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개 패듯이 두드려 패는 것도 봤고, 건설회사가 고용한 용역깡패들이 새벽에 소화기 뿌리며 쳐들어와서 엄청 밟히고 쫓겨났다가 다시 찾는다고 싸우고 거기에 각목에 소화기가 막 날아들고... 경찰한테 끌려갈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사랑도 했고, 학사경고도 받았고. 당 가입도 하고. 그랬다.
언젠가부터 방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는 상태가 계속됐다. 심지어 밥도 안 먹었다. 술을 먹고 울거나 할 뿐이었다. 우울증에 걸린 거다. 휴학을 했다. 1년동안 약을 먹었지만 다 낫지 않았다. 약 먹을 때나 멀쩡하지. 가끔 빼먹게 되면 아직도 힘들다. 이유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휴학하고 병원을 다니는 상황에서 집에 경찰관들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당했고, 대공분실에서 8차 조사까지 받았고, 자살 기도를 해서 폐쇄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이게 내 근황이다. 글쎄. 그래도 내 과거를 후회하진 않는다. 그때의 그 선택이 없었더라면 절대 배우지 못했을 많은 것들이 있고, 또한 그것들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어떤 선택들에 대해선 후회가 들기도 하네.
바로 아프고 나서 부턴 내가 뭘 하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이 없어졌다는 거. 누군가는 그 질문이 딱히 의미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고 이야기하지만,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요즘 한진중공업에서 돌아가신 분도 그렇고, 기아자동차에서 돌아가신 분도 그렇고 그 죽음들이 얼마나 나를 연민하게 만드는 지 모른다. 왜 노동자는 죽어서도 그렇게 내팽겨쳐져야 하는지. 한진중공업 회사는 자살한 노동자의 장례를 공장 안에서 치르게 해 달라고 요구하니까 공장 문을 걸어잠그고 시신 보존용 냉동차도 못 들어오게 하고, 기아자동차에서는 자살한 비정규직 노동조합원의 장례식장에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이 쳐들어와서 회사와의 문제를 해결짓지도 않고 장례를 치르라 협박하면서 조의금을 들고 도망쳤다고 한다. 연민이라는 감정. 이건 한편으로는 '내가 저 지경이 아니' 라는 것에 무한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마나 불쌍한가' 하는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승자의 감정이라는 말이지. 나는 사실 이런 값싼 연민밖에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연민하기도 한다.
글쎄. 많은 걸 놓아버려야 하는 때가 온 걸까.
너무 많은 걸 잡고 있으려 하니 힘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