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존경하는 재판장님

안녕하십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난 2012년 당시 트위터상의 북한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우리민족끼리> 계정의 트위터 글들을 리트윗하여 국가보안법상의 찬양 고무와 이적표현물 배포 혐의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을 압수수색당하고 서울 모처에 있는 수사기관, 소위 '대공분실' 에서 하루 12시간씩 여러 차례에 걸친 조사를 받은 바 있는 서울에 거주중인 대학생 권용석 입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탄원서를 써 보내드리는 이유는 마침 저와 나이도 비슷한 한 청년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기 위함입니다. 그의 죄목은 국기모독죄, 공용물건 손괴, 해산명령 불응 등으로, 바로 지난 4월 18일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 당시 기자들 앞에서 태극기를 라이터로 태워 언론에 보도된 사람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주거도 일정치 않고 증거 인멸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합니다. 따라서 그는 구속될 요건이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저는 그의 구속과 그에 대한 일부 언론들의 과도한 악마화가 부당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기모독죄' 는 형법 제 105조에서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 제거 또는 모욕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주체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 이 있었느냐의 여부입니다. 일전의 한 인터넷 언론사 <슬로우뉴스> 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시민들에게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이 이런 순국선열들의 태극기를 상징으로 내세울 자격이 없다" 고 보아 경찰 버스에 있던 태극기를 불태운 것이지,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 이 없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허나 지금까지 본 사건의 흐름은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유죄로 사실상 결론이 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해당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 부터 법무부 장관과 집권 여당까지 모두 그를 엄벌에 처하겠다며 분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유죄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끼워맞추기식 수사. 저도 당해본 적 있습니다. 2012년 대공분실에서 저는 제가 그때까지 썼던 수백건의 트위터 글들 하나하나마다 북한을 찬양하는 의도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고, 수사관들은 제가 읽은 책들을 증거로 저의 사상을 규정하고자 했습니다.
"권용석 학생은 공산주의자죠?" "이 글은 북한을 찬양하기 위한 의도로 보이는데 맞나요?" 이 질문들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제가 어떤 식으로든지 그분들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마 이 사건의 조사도 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그 청년이 대한민국을 모욕할 의도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그가 계속된 수사에 지쳐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할 때까지 질문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수사는 부당합니다. 행위 주체가 그런 의도가 없었음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증명할 수 없는 그의 머릿속에 대한 수사를 하는 것. 이것은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당시 많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던 저도 이후 부담감에 자해를 하고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하물며 이렇다할 조력자는 커녕 국가 전체가 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는 그 청년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는 아직 20대 초반. 산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최소한 세 배는 많은 청년입니다. 이른 나이에 옥고를 치뤄 그의 앞날을 막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비슷한 일을 이전에 겪어 본, 그래서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한 청년으로써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재판장 님의 양심과 인권의 기본원칙들에 부합하는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2015년 6월 1일


권용석 드림.



'당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630 '사는게꽃같네' 방문  (0) 2015.07.02
20150606  (1) 2015.06.07
얼, 그레이  (0) 2015.05.20
2015. 1. 10 [Salto mortale!]  (0) 2015.01.10
20140525  (0) 2014.05.2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