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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월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지난 2015년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관련 일반교통방해 재판 최후진술이 있었습니다. 검사는 벌금 200만원을 주문했고 변호사는 당시 교통이 이미 경찰에 의해 막혀 있었던 점, 제가 주최자가 아닌 단순 개인 참가자라는 점을 들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니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1심 선고는 오는 28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있습니다.

판사의 성격과 정황으로 볼 때 무죄판결은 어려울 것 같고 벌금이 감액되거나 할 듯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노총 구제금이 지난 민중총궐기 사건 때문에 많이 부족해져서 벌금을 지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모금을 해야 하려나 봅니다.

다음은 제 최후진술 전문입니다.


​2016고정1458 일반교통방해 1심
최후진술


진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2015년 4월 24일 민주노총 총파업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하였다 1만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과 공모하여 종로 일대의 도로교통을 방해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를 당했습니다. 미리 신고가 된 집회였으니 당연히 경찰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미리 종로 일대의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집회 주최 측에서 신고한 범위를 따라 움직였고 현장에서 어떠한 물리력도 행사하지 않았음은 여러분 모두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변호인께서 충분히 변론하셨으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9월 9일입니다. 1948년 이 날 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고 같은 해 8월 15일 남에서는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습니다. 그 해부터 오늘날까지 6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많은 양심적인 이들이 두 정권 중 어느 하나의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처벌받고 감옥에 가고 죽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국가와 법이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국가도, 법도 사회체제도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60여 년 전 이 땅에서 독립된 민주주의국가를 요구하는 것은 반역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독립된 민주국가가 되었습니다. 가까이는 30년 전 이 땅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사람들은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는 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때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 중에는 전직 대통령이 된 사람들도,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고난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을 했습니다. 물론 노동자들의 권리와 민주주의 또한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역사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향해 진보해 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입니다.

60년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볼 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수천 년 인류 역사에 비한다면 찰나와도 같은 시간입니다. 그 인류 역사의 진보를 추동한 것은 피억압계급의 계급투쟁이었습니다. 검사님께서 저를 기소한 이유는 모두가 알고 계시듯이 이러한 계급투쟁의 일환이었던 민주노총 노동자대회가 도로교통을 방해하였다는 혐의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600년짜리 자본주의 질서를 바꿔내는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진보를 이어가기 위한 싸움이라면 검사님의 이번 기소는 60년짜리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진보에 맞서 60년짜리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 역사적 관점에서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비록 그 배움의 정도는 높지 않지만 거기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사회체제는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이성에 대해 건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 중에서도 사회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회에 어떤 모순들이 있고 그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얼마 전 일어난 구의역 사고처럼 돈이 없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죽어가는 사회, 세월호 사고처럼 이윤추구를 위해 안전이 무시되는 사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기 위해 개인의 자아실현을 억눌러야 하는 이런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닙니다. 저는 돈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그 인품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사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들을 하고 그 자아실현을 위한 행위가 전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일찍이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만들었던 소위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필가 사무엘 베케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실패하라,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고대 노예제 사회보다 나은 사회였던 봉건사회도 많은 모순이 있었고 그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건설된 자본주의 사회에도 많은 모순들이 있습니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였지만 연속된 실패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봉건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인 것처럼 이 실패들을 통해 인류는 진보해왔습니다. 이번에 선고가 내려질 이 사건도 제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인류의 진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었던 작은 기여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죄목으로 구속되어 감옥에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과 그 외 사회의 진보를 위해 싸우다 구속된 노동자, 양심수들의 무죄 석방을 기원합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하겠습니다. 또한 성실히 변론에 임해주신 변호사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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