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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대선과 당명 개정

'정치' 라는 것을 우리는 여러가지로 정의합니다. 크게는 한정된 재화를 분배하는 행위 자체를 정치라고 보는 경우부터 좁게는 부르주아 의회정치에서의 정쟁만을 정치라고 보는 관점까지, 보통 대중들의 인식은 후자로 수렴합니다. 다분히 반정치적이죠.

보통 동양 고전 정치철학의 입장에서라면 정치는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며 권력의지를 실현해나가는 것' 으로 가득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한비자> 에 나오는 구절이죠. 그 송나라와 초나라가 전쟁을 하는데 강을 건너고 있는 적을 공격할지 말지 결단을 못 내리다가(병법에서 강을 건너느라 진형을 정비하지 못한 적을 공격하는 건 기초 상식) 대열을 갖추지 못한 적을 공격하는 것에는 명분이 없다며 송나라는 공격하지 않았고 결국 패하고 말았다는 고사 말입니다. 여기서 송나라 우사마 구강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왕이시여! 나라는 반드시 백성을 근본으로 여겨야 합니다. 송나라 인민들의 생명도 보장하지 못하면서, 어찌 군자의 도리만 말씀하십니까?"

대선을 하느냐 마느냐, 당명을 바꾸느냐 마느냐 말이 많습니다. (독자)대선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당명 개정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저마다의 명분과 그 속에서 챙기고자 하는 실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실리이자 명분이겠습니다.

​ 먼저 대선에 관하여

일각에서는 탄핵이 기각되리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조기대선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3월 초에 탄핵 결과가 나온다면 늦어도 5월 초, 판결이 늦어진다면 6월 전에는 대선이 치뤄집니다. 며칠 전(7일) 민주노총에서 대중조직들을 기반으로 한 민중경선과 후보선출이 부결되었으므로 이 상황에서 우리가 대선에 대응하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노동당 독자 후보 전술
2. 노동당의 후보를 배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의당보다 왼쪽의 정치조직들과 함께하는 전술
3. 대선 보이콧


1번 안은 지금까지 사회당-진보신당이 쭉 해왔던 그것입니다. 돈이 얼마나 들건(5억 +, 2월 11일 전국위원회 자료를 보면 7억) 후보를 세우고 지지율이 얼마가 나오건 하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렵습니다.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과 당세의 부진은 객관적으로 이를 증명합니다. 이 상황에서 독자대선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경로의존성' 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노동당원으로 '우리 당' 후보를 찍을 수 있다는 당원들의 심리적 요인(=사기) 과 대선 과정에서 우리 당의 이름으로 만날 수 있는 대중들이라는 두 가지에 비해 들여야 하는 당 자산과 당력이 압도적입니다. 물론 대선을 하지 않고 그 돈과 당력을 일거에 결집시키기는 어려운 노릇이지만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3번 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당원들의 입장에서는 '우리 당'의 후보가 없다는 점에서 '내가 이러려고 노동당에 입당했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설득력있는 안이 있다면 충분히 상쇄될 수 있을 것입니다.

2번 안은 언뜻 보기에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실리와 명분 모두 챙길 수 있죠. 우리 당의 후보가 선출된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당력을 덜 들일 수 있으니 좋은 일입니다. 우리 당의 강령과 정책을 어느정도 대변하는 공식 지지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니 명분도 섭니다. 하지만 이 안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진보정치 세력 사이 통합, 연대 논의가 그러하였듯이 상대편 행위자 또한 선하며, 공통의(?) 이상을 위해 얼마든지 양보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정치조직들은 저마다 내세우는 명분이 있고 대선을 통해 챙기고자 하는 실리들도 있습니다. 비록 그 명분은 대동소이할지라도,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 어떻게 움직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경우에는 좀 더 뻔뻔하고 조직력이 있는 쪽이 조금이라도 더 챙기는 법이죠. 통합진보당의 창당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명 개정에 대하여

이번 당직 선거를 기점으로 해서 당명 개정에 관한 논의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조기 대선 전 당명 개정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거로는 '조선로동당을 연상시킨다' 는 다분히 편의주의적인 발상에서부터 노동당의 이름이 우리 당의 가치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이유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노동당이라는 이름이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있어 패널티일 수는 있으나 결코 결정적인 것은 아니며, 우리 당의 가치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어떤 당명에 대해서도 가능합니다.

당명 개정,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당이 당명을 개정한다면 실질적으로 해야 할 일은 행정적 서류 작업들 외에는 당 사무실의 간판을 바꾸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바꾸는 것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당명 개정 작업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당명과 우리의 가치를 드러내는 당명 사이를 적절히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니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전자만을 고려한다면 인터넷으로 공모해서 '좋아요' 를 가장 많이 받은 이름으로 정하면 되고, 후자만을 고려하다면 그냥 '공산당' 하면 됩니다.

여기서 그동안 감춰져 있던 부분이 드러납니다. 바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조기대선 전 당명 개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2013년 노동당으로의 당명 개정은 4월부터 공모를 시작해서 7월 말 당대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3개월이 걸렸죠. 지금 조기대선 전에 당명을 개정하려면 3월 당대회에서 통과시키는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개정 논의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한 달 남짓 남은 시간동안 지난 2013년 당명 개정보다 더 폭넓은 논의와 당원들의 총의를 모아가는 과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당명 개정 없는 독자대선은 이미 당명 개정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절차와 의견수렴을 거친 당명 개정과 독자대선은 시간상 불가능합니다. 결국 당명 개정과 대통령 선거는 양자택일의 문제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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