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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초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소화 46년(1971년) 최초 발간된 축마서방 판⟨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 제4권⟩을 저본으로 하며,

Charles De Wolf 의 영문 번역을 참조하여 직접 번역하였다. - 야우리





그는 청년 사회주의자였다. 하급 공무원인 그의 아버지는 이 때문에 그와 의절하겠다고 위협했지만 그가 품고 있는 불타는 정열과 얼마간은 친구들의 격려 덕에 그는 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조직을 결성하여 십여 페이지 짜리 소책자를 발간하고,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이런저런 활동들을 했다. 물론 그는 회합에 절대 빠지지 않았으며 가끔 그의 논문들이 소책자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런 소책자들은 그들 주변을 빼면 그닥 읽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는 ⟨리프크네히트를 회상하며⟩라는 제목의 논문 한 편 만큼은 다소 자신하고 있었다. 그 글에서 전개한 사상은 그렇게까지 치밀하지 않았으나 시적 정열만큼은 가득한 글이었다.


이내 학교를 마친 그는 어떤 잡지사에 취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회합에 참석하는 것 만큼은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와 동지들은 그전처럼 열심히 그들 앞에 놓인 문제들을 토론하면서 지하수가 암반에 구멍을 내듯이 천천히 목표를 실행에 옮기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제 그의 아버지는 그의 일에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해서 작은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 집은 정말이지 작은 집이었지만, 그것이 불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꽤나 행복한 편이라고 느꼈다. 아내, 강아지, 마당가에 있는 포플러 나무 - 이 모두가 그의 삶에 그전까지는 전혀 느껴볼 수 없었던 어떤 편안한 친밀감을 선사했다.


이제 부양할 가족이 생겼고, 한편으로 그는 촌각을 다투는 직장 업무에 치이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그가 조직 회합에 얼굴을 비추는 일도 드물어졌다. 허나 그의 정열이 빛을 바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최소한 그는 수 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 그의 동지들은 -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조직에 새로 들어온 청년들은 그의 나태함을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고 그를 비판했다.


물론 이럴수록 그는 한 층 더 알게 모르게 조직에서 멀어져만 갔다. 이 즈음 그는 아버지가 되었고 가정적인 친밀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정열만큼은 그대로였다. 그는 밤이 새도록 전등 아래서 학습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그가 예전에 썼던 십수편의 논문들 - 그 중 특히 ⟨리프크네히트를 회상하며⟩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면에 그의 동지들은 갈수록 더 그에게 냉담해졌다. 그는 이제 그들의 비판 대상이 되기에도 부족했다. 그들은 그를 그렇게 남겨둔 채로 - 어떻게 보자면 대체적으로 그와 가까운 사람들도 같이 남겨둔 채로 - 사업을 착착 진행시켜 나아갔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새삼스레 푸념해보기도 했지만, 그가 세속의 평온함에 만족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그는 어떤 회사에서 일하면서 중역들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이 결과 그들 부부는 훨씬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자식도 몇 명 더 낳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열정 - 그게 어디로 갔는지는 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가끔 등나무 의자에 기대앉아 시가 한 대를 즐기면서 청년시절을 회상하고는 했다. 그 회상은 그를 묘한 우울감에 빠트렸다. 결국에는 동양적인 '체념'의 감정이 그를 구원하고는 했지만 말이다.


그는 확실한 낙오분자였다. 반면에 그가 쓴 ⟨리프크네히트를 회상하며⟩는 어떤 청년을 바꾸어 놓았다. 주식에 손을 대 부모에게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날린 오사카의 어떤 청년이었다. 청년은 그의 논문을 읽었고 그로 인해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물론 그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지금도 등나무 의자에 기대앉아 시가 한 대를 즐기면서 청년시절을 회상하고 있으리라. 인간적으로, 아마도 너무나 인간적으로.[각주:1]


- 대정 15년(1926) 12월 10일



  1.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작,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의 오마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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