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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I. 레닌] 당 조직과 당 문헌

야우리 2019. 4. 12. 23:25

한국어 번역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번역하였다.[각주:1]


1920년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 제9차 당대회 결의와 1924년 제2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노동자 농민 병사 대표자 소비에트 대회의 결의에 따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산하 맑스-레닌주의 연구소가 편집하고 국립 정치문헌출판사에서 출판한 러시아어판 <레닌 전집>의 공식 영역본인  

V. I. Lenin, <Collected Works>, Vol. 10(4th ed.), pp. 44-49, Moscow, Progress Publishers(1978)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하였다.

원문의 경우에는 러시아어판 <레닌 전집> 제5판 12권 99-105페이지를 참조하였다.

위의 저작들은 Marxists Internet Archive (https://www.marxists.org)에서 구할 수 있다.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V. I. 레닌, <레닌의 문학예술론>, 이길주 옮김, pp. 50-56, 논장(1988)과 

V. I. 레닌, <레닌저작집>, Vol. 3-3, 김탁 옮김, pp. 310-315, 전진출판사(1990)를 참고하였다.

주석을 다는 데에는 위의 한국어 번역본들의 번역자 주석과, 최상철(2009), ‘맑스-레닌주의 문학예술론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한 고찰’, 노동사회과학, 제2호, pp. 289-324를 주되게 참고하였다. 전집 편집자가 달아놓은 주석에는 별도로 표기를 하였다. - (권용석(야우리)




10월 혁명[각주:2] 이래 발생한 러시아에서의 사회민주주의적 활동의 새로운 조건들은 당 문헌의 문제를 전면에 제기했다. 러시아가 봉건적이고 전제주의적이었던 시절의 우울한 유산인 비합법과 합법 출판물 간의 구별은 사라지기 시작했으나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우리 수상의[각주:3] 위선적인 정부는 <이즈베스찌야 싸볫따 라보치흐 제뿌따또쁘>[각주:4]가 ‘비합법적으로’ 인쇄될 만큼 여전히 미쳐 날뛰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방해할 수 없는 것을 ‘금지하려는’ 시도에서는 정부에 불명예를 가져오고, 거기에 더 심한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비합법과 합법 출판물 간의 구별이 존재했던 때 까지는, 당 출판물과 비당 출판물의 문제는 극도로 단순하고 극도로 잘못된 비정상적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여러 조직들과 당 활동가 그룹과 연계된 그룹들에 의해 운영되고 출판되는 모든 비합법적 출판물들은 당 출판물이었다. 정당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모든 합법 출판물들은 비당적이었으나 그것은 이런저런 정당의 성향에 이끌리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동맹관계, 즉, 낯선 ‘동거인들’과 가짜 표지 만들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당의 관점을 표현하길 원했던 이들에 대한 강제적인 제한들은 그러한 견해에 도달하지 못한 비당원들의 비성숙한 사고와 비겁함과 섞여 있었다.


우화적인 언어, 문필적 속박, 노예적 언론과 사상적 농노제의 저주받은 시대여! 프롤레타리아트는 러시아의 모든 살아있고 신선한 것들을 질식시키던 이 더러운 환경을 끝장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프롤레타리아트는 러시아의 자유의 오직 절반만을 쟁취하였을 뿐이다.


혁명은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 짜르 전제는 더 이상 혁명을 패배시킬 만큼 강하지 못하지만, 혁명은 아직 짜르 전제를 패배시킬 만큼 강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공개적이며 직접적이고 일관된 당의 신조와 지하의, 비밀스러운 ‘외교적’이고 교활한 ‘합법성’의 부자연스러운 결합이 도처의 모든 것에 작용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부자연스러운 결합은 심지어 우리 신문에서도 느껴진다. 온건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신문의 발행을 금지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압제에 대한 구치꼬프[각주:5] 선생의 농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각주:6]의 중앙 기관지인 <쁘롤레따리>[각주:7]가 전제적이고 경찰 탄압이 지배하는 러시아의 잠긴 문 밖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미완의 혁명은 우리가 새로운 노선에 따라 모든 것을 조직하는데 즉시 착수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이 ‘합법적으로’ 출판되는 것일지라도 오늘날 출판되는 문헌의 십중팔구는 당 문헌이 될 수 있고, 당 문헌이 되어야 한다. 부르주아적 관습, 이익 창출을 위해 상업화된 부르주아적 출판, 부르주아적인 문학 출세주의와 개인주의, ‘귀족적 무정부주의’, 그리고 이윤 추구와는 대조적으로,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는 당 문헌의 원칙을 내세우고 이 원칙을 발전시키며 최대한 완벽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당 문헌의 원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문헌이 개인이나 집단을 풍요롭게 하는 수단일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 대의와 독립적인 개인의 과업이 될 수는 없다. 비당파적 저자들을 타도하라! 문필의 초인[각주:8]들을 타도하라! 문필 활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 대의의 부분이 되어야 하며,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전체 노동계급의 전위 모두에 의해 작동하는 단일하고 거대한 사회민주주의적 기계장치의 ‘톱니바퀴와 나사’가 되어야 한다. 문필 활동은 조직되고 계획되며 통일된 사회민주주의 정당 활동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모든 비유는 불완전하다’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문필 활동을 톱니바퀴에 비유하고, 생동하는 운동을 기계장치에 비유한 나의 비유도 그러하다. 그리고 내가 감히 말하건대, 저런 비유가 자유로운 사상투쟁, 비판의 자유, 문예창작의 자유 등등을 저해하고, 사멸시키고 ‘관료주의화한다’며 아우성치는 신경질적인 지식인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상 그러한 항의들은 부르주아 지식인의 개인주의의 표현 그 이상이 아니다. 문헌이 기계적 조절이나 평준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지배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분야에서 개인의 독창성, 개인적 취향, 사고와 상상, 형식과 내용이 넓은 범위에서 의심 없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점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모두를 부정할 수 없으나, 이 모두는 프롤레타리아 정당의 문헌적 측면에서의 대의가 다른 측면과 기계적으로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헌이 전적으로 그리고 필수적으로 다른 요소들과 불가분하게 결합된 사회민주주의 정당 활동의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부르주아지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게 낯설고 괴이할 주장을 조금도 반박하지 못한다.  신문은 다양한 당 조직들의 기관지가 되어야 하고, 그 필자들은 반드시 그 조직들의 조직원이 되어야 한다. 출판과 배포 센터, 서점과 독서 공간, 도서관과 그와 유사한 시설들은 당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조직된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모든 활동들을 주시해야 하며, 전적으로 감독하고, 어떠한 예외도 없이 시종일관 생동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대의를, 삶의 흐름을 주입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는다’라는 낡은 반오블로모프적(semi-Oblomov)[각주:9]이고 반소상인적인(semi-shopkeeper) 러시아적 원칙의 토대를 무너뜨려야 한다.


우리는 당연히 아시아적 검열과 유럽 부르주아지에 의해 더럽혀져온 문필 활동의 변화가 한번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표준화된 시스템이나 몇가지 법령에 의한 해결을 옹호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여기에 틀에 박힌 도식을 적용할수는 없다. 우리 당 전체와 전체 러시아의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사회민주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 모두가 이 새로운 문제를 인지하고, 명확하게 구체화시켜 도처에서 그것을 해결하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봉건적 검열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부르주아 소상인적인 문필적 관계의 포로가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경찰 뿐 만 아니라, 자본, 출세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르주아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출판을 확립하기를 원하며 그렇게 할 것이다.


마지막 말은 독자에게 역설적이거나 모욕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자유의 열렬한 옹호자인 일부 지식인들은 소리칠지도 모른다. 뭐라고! 당신은 문학 활동과 같은 개인적이고 고상한 문제에 집단적인 통제를 가하기를 원하는 것인가! 당신은 노동자들이 과학, 철학 또는 미학의 문제들을 다수결로 정하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사상적 활동의 절대적 자유를 부정하는군!


신사 양반들, 진정하시길! 무엇보다도 우리는 당 문헌과 그것의 당 통제에 대한 종속을 논의하고 있다. 모두는 자유롭게 제한받지 않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쓰거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을 포함한) 모든 자발적 결사체는 당에 반대하는 견해를 당의 이름으로 옹호하는 회원들을 쫓아낼 자유가 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완전해야 한다. 하지만 결사의 자유 또한 완전해야 한다. 나는 언론 자유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이 소리치고, 거짓말하고, 마음 속에 담아둔 것들을 쓸 완전한 권리를 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결사의 자유의 이름으로 내게 이런저런 견해를 주장하는 결사체에 가입하거나 탈퇴할 권리를 줄 수 밖에 없다. 정당은 자발적 결사체이기 때문에, 반당적 견해를 옹호하는 이들을 자체적으로 청소하지 않는다면 일단 사상적으로, 다음에는 물리적으로 무너지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당적인 것과 반당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정의하기 위해 당 강령, 전술에 대한 당의 결의안과 규약,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자발적인 국제적 결사체인 국제 사회민주주의의 모든 경험들이 있는데, 거기서는 불철저하고, 완전히 맑스주의자도 아니면서 꼭 올바르지도 않은 개인이나 경향을 정당에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내부에 대한 정기적인 ‘청소’를 지속적, 주기적으로 실시했다. 당 내의 부르주아적 ‘비판의 자유’의 지지자들은 우리에게도 역시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갑자기 대중 정당이 되고 있으며, 공개 조직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어서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불철저한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기독교적인 이들이나 심지어 신비주의자들도 들어올 수 있다. 우리는 건강한 위장을 가진 바위같은 맑스주의자들이다. 우리는 이런 불철저한 요소들을 소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당 내의 사상과 비판의 자유로 인해 당이라는 자발적 결사체로 사람들을 조직할 자유를 잊게 될 리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당신네 부르주아 개인주의자들에게 절대적 자유에 대한 당신들의 이야기가 완전히 위선이라는 말을 해야 하겠다. 돈의 힘에 기초해 있는 사회,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은 가난 속에 사는데 한 줌의 부자들이 기생충처럼 살고 있는 사회에 진짜 유효한 ‘자유’란 있을 수 없다. 작가 양반, 당신은 부르주아 출판업자와의 관계에서 자유로운가? 소설[각주:10]과 그림으로 포르노를 제공하고, ‘신성한’무대 예술의 ‘부록’으로 성매매를 제공하기를 요구하는 당신네 부르주아 대중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운가?[각주:11] 이런 절대적 자유라는 것은 부르주아적이거나 무정부적인 헛소리다(왜냐하면, 세계관으로서의 무정부주의란 뒤집어 놓은 부르주아 철학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사는 이상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부르주아 작가, 예술가, 또는 여배우의 자유란 돈주머니, 부패, 성매매에 대한 종속의 위장(또는 위선적인 가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이 위선을 폭로하고 거짓 이름표를 떼어버린다. 그것은 비계급적인 문학과 예술(이것은 계급을 초월한 사회주의적 사회에서나 가능할 것이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부르주아지와 연계되어 있는 이 위선적으로 자유로운 문학을 프롤레타리아와 공개적으로 연계될 진정 자유로운 문학과 대비시키기 위해서다.


그것은 욕심이나 출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감이 그 구성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것이기에 자유로운 문학일 것이다. 그것은 몇명의 배부른 여주인공이나, 지방간으로 고통받으며 권태로워하는 ‘수천명의 상류층’에게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꽃이며 힘이고 미래인 수천, 수백만의 노동자 민중에게 이바지할 것이기에 자유로운 문학일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혁명적 사상의 결론을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생동감 있는 업적과 경험으로 풍부하게 하며, 과거의 경험(원시적이고 유토피아적인 형태에서 과학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사회주의 발전의 완성)과 현재의 경험(오늘날 노동자 동지들의 투쟁) 사이의 영원한 상호작용을 일으킬 것이기에 자유로운 문학일 것이다.


그럼, 일하러 갑시다 동지들! 우리는 새롭고 어려운 임무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는 사회민주주의적 노동계급 운동과 불가분하게 연계된 광범위하고 다양한 형식의 다채로운 문헌들을 조직하는, 숭고하고 기쁜 일이다. 모든 사회민주주의적 문헌은 당 문헌이 되어야 한다. 모든 신문, 잡지, 출판사 등은 즉시 사업을 재편성하여 이런저런 형태로 이런저런 당 조직에 통합되는 상황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회민주주의적’ 문헌이 그 이름에 걸맞는 값을 하게 될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그것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심지어 부르주아 사회의 구조 안에서도 부르주아적 예속을 분쇄하고 진정으로 선진적이고 철저히 혁명적인 계급의 운동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노바야 지즌>[각주:12] 12호

1905년 11월 13일

N. 레닌 이라 서명함




  1. <Партийная организация и партийная литература>(Partiynaya organizatsiya i partiynaya literatura, 당 조직과 당 문헌)는 흔히 <당 조직과 당 문학>으로도 많이 번역되는데, 러시아어 ‘литература’(literatura)는 문학예술 뿐만 아니라 논설, 기사 등 비문학까지도 포괄하는 단어이다. 이 글에서 레닌은 당 기관지 등에 기고하는 당원들의 자세부터 문학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논하고 있기 때문에 ‘문헌’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맥락에 따라 ‘문학’, ‘문필’으로도 혼용하였다. [본문으로]
  2. 1905년 10월 17일, 노동자 총파업으로 인해 짜르 정부는 ‘10월 선언’을 발표하여 출판, 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이 해 12월까지 계속된 전국적인 노동자 총파업, 소요 등을 1905년 혁명이라 지칭한다. [본문으로]
  3. 세르게이 율리예비치 비테(S. Yu. Witte, 1849~1915), 러시아 제국의 초대 총리. 기본적인 시민권을 보장한 1905년 10월 선언을 기초하였으나 러시아는 여전히 전제정 하에 있었다. [본문으로]
  4. <Известия Совета Рабочих Депутатов>(Izvestiya Soveta Rabochikh Deputatov,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회보), 1905년 10월부터 12월까지 발행된 성 페테르부르크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기관지. [본문으로]
  5.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구치꼬프(A. I. Guchkov 1862~1936), 러시아의 보수적 자유주의 정치인, 당시 두마(의회) 의원. [본문으로]
  6. Российская социал-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рабочая партия(Rossiyskaya sotsial-demokraticheskaya rabochaya partiya, RSDLP), 1898년 창당된 러시아의 사회주의 정당. 여기서는 레닌이 속해 활동하던 당내 다수파인 속칭 ‘볼셰비키당’, 훗날의 러시아 공산당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7. <Пролетарий>(Proletariy, 프롤레타리아), 당시 볼셰비키가 발행하던 주간 신문, 중앙 기관지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3차 대회의 결의로 창간되어 1905년 5월부터 11월까지 제네바에서 발행되었다. [본문으로]
  8. 러시아어 ‘сверхчеловек’(sverkhchelovek)은 니체의 ‘초인’(Übermensch)을 뜻한다. 맥락상 모든 계급적, 정치적인 입장을 ‘초월한 인간’의 의미. [본문으로]
  9. 오블로모프는 러시아 작가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I. A. Goncharov, 1812~1891)의 소설 <오블로모프>의 주인공이다. 어떤 욕망도, 의욕도 없이 누워서 살아가는 정적인 지주계급의 인물이지만 그 나태 아래에는 인간적 고통, 열정을 숨기고 있다. [본문으로]
  10. <노바야 지즌>에 실린 러시아어판 원문에는 ‘рамках’(ramkakh, ‘틀’) 이라 쓰여 있으나, 맥락상 이는 ‘романах’(romanakh, ‘소설’)의 오타이다. - 전집 편집자. [본문으로]
  11. 20세기 중반까지, 발레, 무용, 연극 등의 무대 예술의 배우들이 후원자들과 사실상의 ‘성매매’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오늘날 연예인, 가수 등의 ‘성상납’ 사건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본문으로]
  12. <Новая Жизнь>(Novaya Zhizn’, 신생활), 1905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던 볼셰비키의 합법 일간 신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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