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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작 니코마코스 윤리학 에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1권 1장에서

‘좋음(선)이야말로 당연히 모든것이 추구하는 목표다. 그러나 그것들의 목적들(telos)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것들은 활동(energia) 자체가 목적이지만, 어떤 것들은 활동에 수반되는 결과(ergon)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활동에 수반되는 목적이 있을 경우 결과는 당연히 활동보다 우월하다.’


1-4

‘실천적인 좋음들 가운데 최고선은 무엇인지 논의해보자… 대중도 교양인들도 그것을 행복(eudaimonia)라고 부른다.’


1-5

‘삶에는 세 가지 두드러진 유향이 있는데, 향락적인 삶(라틴어 vita voluptatis,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삶)과 정치가의 삶(bios praktikos, 라틴어 vita activa, 활동적인 삶)과 관조적인(theoria) 삶(bios theoretikos, 라틴어 vita contemplativa)이 그것이다. 정치가의 삶의 목적은 명예라고 할 수 있는데, 명예 또한 미덕(arete)에 근거하므로 미덕이 정치가의 삶의 목적이다.’


1-6

6장에서, 플라톤과 그 친구들의 이데아론을 반박하며 좋음의 이데아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이 그걸 알거나 볼 수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적, 어느정도는 유물론적 태도가 드러난다.


1-7

‘인간에게 좋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자족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행복이다. 행복은 무조건 궁극적인 것 같다.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고,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족이라는 관점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는 것 같다… 자족이란, 그 자체로 삶을 바람직하게 만들며 아무것도 모자람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행복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는데 있다… 이성적인 부분의 활동적인 삶(라틴어 vita activa)은 인간에게 고유한 기능이다. 이성적인 부분은 다시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이성에 순응한다는 의미에서 이성적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을 갖고 사고한다는 의미에서 이성적이다.’


1-8

‘좋음은 외적인 좋음, 몸의 좋음, 혼의 좋음으로 삼분된다. 이 가운데서 혼의 좋음을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의 좋음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좋음을 어떤 미덕이라고도 여기는데,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는 자는 경기에 참가한 자들이듯이, 올바르게 ‘행동’하는(=미덕을 발휘하는)자는 행복하다. 또한 이런 유덕한 행위는 쾌락을 준다. 델로스 섬의 명문처럼 - 가장 고상한 것은 정의이고, 가장 훌륭한 것은 건강이다. 그러나 가장 즐거운 것은 바라던 것을 얻는 것이다.’ 최선의 활동(=행복)은 이런 속성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행복에는 분명 외적인 좋음도 필요하다. 재원이 없으면 고상한 행위를 하기가 불가능하거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못생겼거나 불량한 친구들을 두었거나 친구들과 사별한 사람은 행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행복을 행운이나 미덕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적 태도)


1-9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행복에 대한 우리의 정의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행복은 혼의 모종의 유덕한(=미덕이 있는) 활동이며, 다른 좋음들 가운데 더러는 행복의 필수 전제조건이고 더러는 자연스럽게 협조하는 것들로서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말한 바 있다.’



1-13

‘미덕도 여러 종류로 나뉜다. 우리는 철학적 지혜, 이해력 등을 지적인 미덕이라 하고, 후함과 절제 같은 것은 도덕적인 미덕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칭찬받을만한 마음가짐들을 우리는 미덕들이라고 부른다.’


제2권 1장

‘지적인 미덕은 주로 교육에 의해 생겨나고 성장하기도 한다. 한편 도덕적인 미덕은 습관의 산물이다 . 이는 도덕적(또는 윤리적, ethik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인 미덕들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여 습관화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미덕들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천해봐야 한다. 예컨대… 올바른 행동을 해야 올바른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해야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모든 미덕은 같은 원인과 같은 수단들에 의해 생겨나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한다… 건축을 잘하면 훌륭한 건축가가 되고, 건축을 서투르게 하면 서투른 건축가가 되니 말이다. 남을 대할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올바른 사람이 되거나 불의한 사람이 되며… 이는 욕구와 분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제6권 12장

‘인간의 기능은 실천적인 지혜(=무엇인가 잘 수행하는 것)와 도덕적인 미덕이 결합될때 완전하게 실현된다. 미덕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실천적인 지혜는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을 올바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실천적인 지혜가 있다고 해서 고상하고 올바른 행위를 더 잘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여러 가지 행위를 행하되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행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서 그 행위 자체 때문에 행하는 것이다. 미덕은 합리적 선택을 올바르게 해준다. 사람들이 ‘영리함’이라 부르는 능력이 있는데, 이는 우리가 설정한 목표에 이르는 행위들을 실행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다. 목표가 고상하면 영리함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목표가 나쁘면 영리함은 악랄함이다. 그 까닭에 실천적인 지혜가 있는 사람도 악랄한 사람도 영리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좋지 않고서는 실천적인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6-13

‘우리는 실천적인 지혜 없이는 진실로 좋을 수 없고, 도덕적인 미덕 없이는 실천적인 지혜를 가질 수 없다.’


제10권 6장

‘행복은 마음가짐이 아니다. 만약 행복이 마음가짐이라면, 평생 잠만 자며 식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나 큰 불행을 당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을 활동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분명 그 자체 때문에 바람직한 활동들 가운데 하나이다. 행복은 다른 것이 필요 없고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바람직한 활동이란 활동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는 활동이다. 놀이들도 이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놀이들로 소일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훌륭한 사람들이 명예롭게 여기는 것이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삶은 미덕에 걸맞는 삶인 것 같다. 그런 삶은 진지함을 수반하는 것이고 놀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육체적인 쾌락은 누구나 즐길 수 있으며, 노예도 가장 훌륭한 사람 못지않게 즐길 수 있다.’


10-7

‘가장 고유하고 최선의 미덕에 걸맞은 활동이 행복이 될 것이다. 그것은 관조적인 활동이다. 지성은 우리 안에 있는 최고 부분이고 지성의 대상은 지식의 최고 대상인 만큼 관조는 최고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관조는 지속적이고, 자족적이며, 그 자체를 위해 행해진다. 실천적인 미덕의 행위는 정치와 전쟁 같은 곳에서 행해지는데, 그것은 행복을 위해 행하지기는 하지만(전쟁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가를 위해, 정치가 동료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행해지듯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평생 지성적인 활동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족적이고, 여가가 있고, 노고로부터 자유롭기에 완전한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도달하기에는 너무 높은 경지이다. 혼과 몸을 가진 인간은 필멸자이기에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지만 되도록이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말하자면 각자에게 고유한 것이, 본성적으로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이자 가장 즐거운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지성에 걸맞은 삶이 최선이자 가장 즐거운 삶이다. 지성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삶은 또한 가장 행복한 삶일 것이다.


10-8

다른 종류의 미덕들에 걸맞은 삶은 두 번째로 행복하다… 우리가 모든 계약과 온갖 행위는 물론이요 각자 자기 의무를 다하며 올바른 행위, 용감한 행위, 미덕에 걸맞는 다른 행위를 하는 것이 그러하다. 또한 실천적인 지혜는 도덕적인 미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덕한(실천적, 도덕적)행위를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하려면 재산, 권력 등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관조하는 이에겐 그런 것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인간이고 공동체의 구성원인 한 위의 미덕에 걸맞은 행동을 하기를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해줄 외적인 좋음들이 필요할 것이다. 행복은 관조의 한 형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인간이기에 외적인 조건도 좋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 본성은 관조할 수 있을 만큼 자족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도 건강해야하고…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바다와 육지를 지배하지 않고도 고상한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9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와 입법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동료 시민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미덕을 실천하기 위해 정치가가 된다면 일단 동료 시민들을 미덕에 가까워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훌륭한 일에 종사하며 살아가되 나쁜 짓을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사람들이 어떤 지성 또는 구속력 있는 올바른 체계 안에서 살아갈 때 가능하다… 어떤 개인의 명령에도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다. 그러나 법률은 일종의 실천적인 지혜와 지성의 선언인 만큼 강제력이 있다… 따라서 많고 적고를 떠나 남들을 개선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땅히 입법 능력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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