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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sa Labra

야우리 2019. 1. 20. 01:11

지난 1월 4일부터 2월 초까지 스페인 마드리드에 어학연수를 오게 되었다. 간단한 여행기를 작성한다.


'1879년 5월 2일 이 집에서,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박해받는 노동자들은 비밀리에 스페인사회주의노동자당을 결성하였다. 1979년 5월 2일’



휘황찬란한 마드리드의 중심지 그란 비아. 언제나 관광객들로 가득한 그 거리. 그리고 이어지는 솔 광장을 걷다 보면 그곳에는 단지 부띠끄들과 백화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걸 알게 된다. 내전 당시 마드리드가 포위 공격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크론슈타트의 수병’, ‘차파예프’ 등의 프로파간다 영화들을 상영해 사기를 고양시켰던 마드리드 최초의 마천루 ‘카피톨’ 영화관, 각국의 군사고문관들과 해외 통신원들의 숙소로 쓰였던 호텔 브리스톨, 격렬한 포/폭격의 와중에도 최후의 순간까지 공화국의 통신 임무를 수행한 전화국 본부까지, 호텔을 무숙자들을 위한 숙소와 식료품 창고로 개조했던 바르셀로나의 경우처럼 ‘혁명적’ 재분배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이전 소유자들이 떠난 건물들은 공화국 정부와 민병대에 의해 사회적 필요에 따라 전용되었다. 그 거대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그란 비아의 끝 솔 광장에서 아주 약간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Calle de Tetuan 12번지에 1860년에 개업한 Casa Labra가 있다.




관광객과 현지인들 모두에게 맛좋은 대구살 튀김으로 유명해 북적대는 Casa Lebra. 치즈 샌드위치와 와인 한 잔의 가격은 4유로다. 
1879년 5월 2일 이 식당의 한 방에서 스페인사회주의노동자당(PSOE, Partido Socialista Obrero Español)의 제1차 당대회가 열린다. 25명의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스페인 지부 회원들은 인쇄노동자이자 타자수였던 마르크스의 사위 폴 라파르그의 친구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를 초대서기장으로 선임하고 강령 초안을 통과시킨다. 인쇄노동자였던 직업적 특성 덕에 그는 이후 기관지 편집자이자 발행인 역할까지 맡게 되는데, 여기서 지급된 임금은 이후 수십년간 이어진 감옥살이와 탄압에 맞서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인쇄 일을 하면서 배운 불어로 사회과학 서적을 몇 권 읽은 것이 전부였을 정도로 이론적 배경은 대단치 않았으나 불세출의 조직가이자 선전가인 그는 UGT(노동총동맹)의 결성과 명명 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고 1889년 PSOE 전국위원회 의장을 맡아 재임한다. 1890년 스페인 최초의 메이데이 집회를 조직한 이후 그는 1905년에는 마드리드 시의회, 1910년에는 스페인 하원의 첫번째 사회주의자 의원이 된다. 이 때 그의 나이 60세였다.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 이후 타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처럼 PSOE 또한 공산주의자들과의 갈등 끝에 1920년 스페인공산당(PCE)의 창당으로 분당하게 된다. 그 갈등은 이후 내전기를 거쳐 큰 상처를 남기게 되고 아직도 스페인에서 ‘사회주의자’란 사민주의자나 PSOE 당원을 지칭하는 단어에 가깝고 흔히 생각하는 맑스-레닌주의자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1925년 12월 사망할 때 까지 그는 충실한 당원이자 사회주의자로 남았고 PSOE 전국위원회 의장을 36년간 역임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15만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스페인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문학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여기 한 성자가 누워 있다’ 로 시작하는 조사를 읽었다. 그는 마드리드 시립 공동묘지에 묻혔다. 지금 그의 곁에는 스페인 공산당의 전설 돌로레스 이바루리, ‘라 파시오나리아’가 묻혀 있다.


그의 죽음 이후 PSOE는 제2공화국과 이어지는 내전 그리고 프랑코 치하에서 집권당이자 주요 저항세력으로 자리매김한다. 1977년 자유화된 스페인에서 PSOE는 다시 합법화된다. 직후 1979년 당대회에서 PSOE는 맑스주의 노선을 완전히 포기하고 자신을 ‘중도 진보 민주 정당’으로 정립한다. 1879년 5월 2일의 창당 이후 정확히 백 년 만의 일이었다.


PSOE는 1982년부터 1993년까지 장기 집권했으며 2019년 현재 스페인의 집권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실례합니다만 그 현판이 어디 있나요? 파블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사회주의노동자당 말인가?”
“네.”
“그걸 보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가게 문 오른쪽 기둥 위에 있다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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