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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3. Telefónica

야우리 2019. 2. 20. 00:39


[‘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나를 잊기 위해 울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저를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맑은 눈으로 말입니다.’ 
-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산화해간 스페인 국영 전화국의 노동자들을 기억하며]



‘카피톨’ 영화관이 있는 그란 비아에서 길을 따라 5분 가량 걸어가면 그란 비아의 가장 높은 지점에 고풍스런 첨탑이 올려진 국영 전화국 건물이 있다. 이 14층 건물은 카피톨 영화관과 함께 1930년대 마드리드의 몇 안 되는 마천루였다. 공화국 스페인과 세계의 나머지를 잇는 신경망의 중추 역할을 하던 이 마천루는 마드리드 포위전 당시 안테나 첨탑이 포병 전방 관측소로 쓰였을 정도로 마드리드 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비록 당시 이 건물은 미국 통신 회사인 ITT(International Telephone and Telegraph company)소유였고 사장과 임원진들은 건물에서 프랑코 장군을 위한 연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친-파시스트적인 행보를 지속했지만, 공화국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은 전화국 건물이 반란군 포, 폭격의 집중 목표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계속했다. 본 건물은 아직 국영 전화국으로 쓰이고 있으나 일부는 개조되어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엘리베이터 옆에는 2미터가 넘는 크기의 위 헌사가 쓰인 여성 노동자의 부조가 설치되어 있다. 전화국 건물은 언급하였듯이 그란 비아의 랜드마크들 중 하나였다. 마드리드 방어전에 투입되는 전세계에서 공화국 스페인을 돕기 위해 모인 국제여단을 비롯하여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노동조합 의용군 병력들은 항상 그란 비아를 따라 전화국 앞을 행진했다.


1936년 11월 8일 제11국제여단 휘하 대대들이 전화국 건물 앞을 지날 때를 당시 11세였던 작가 아르만도 로페스 살리나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푸엔카랄 거리와 전화국 건물의 교차로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3개 대대가 밀집 대형으로 엄숙히 행진하고 있었다. 군기잡히고 제대로 무장한 그들은 빠리 꼬뮌 대대의 프랑스와 벨기에인들, 돔브로브스키 대대의 폴란드와 헝가리인들, 에드가 안드레 대대의 독일인들과 스칸디나비아인들이었다. 사기로 충천한 마드리드는 순식간에 만세 소리와 눈물, 그리고 박수 갈채로 뒤덮였다. 주먹을 쥐고 팔뚝을 높이 든 채, 라 마르세예즈와 인터내셔널을 불렀다.’


이 날 65kg가 넘는 생떼띠엔 기관총을 운용하던 빠리 꼬뮌 대대 기관총반에는 버나드 녹스, 존 콘포드, 존 소머필드 이렇게 세 영국인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나름 이름있는 좌익 작가들이자 친구들인 이 세 영국인은 아르만도 로페스의 회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건 전혀 개선 행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최후의 희망이었다. 장비도 허술하고 배고픈 우리들은 일요일이라 상가들도 문을 닫은 바람부는 거리를 행진했다. 거리의 행인들은 우리가 너무 늦게 왔다고, 죽기 딱 좋은 때 왔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비극의 한 장면 같았다. 인도의 행인들은 분명 환호했지만, 하지만 기저에서 그들은 지금 도착하는 이들이 영화의 주인공 같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행인들은 실제 삶에서의 커다란 비극을 잊기 위해 영화관에 들어서는 관객들이었다.’


65kg짜리 기관총을 나눠 메고 걸었으니 저런 생각을 할 만도 하네 싶지만, 여기서 무엇이 진실인가 따져보는 것은 무용하리라. 마드리드 시민들 중 누군가는 신심 드높이며 인터내셔널을 불렀을 테고, 누군가는 덤덤한 눈길로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국제여단원들은 한 참전용사의 말처럼 ‘자신들에게 보급된 각종 구식 무기들에 탄알을 장전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자본론을 들고 적과 싸우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포격으로 ‘스위스 치즈처럼’되었지만 끝까지 서 있었던 전화국 건물은 앞으로도 마드리드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서 있을 것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당신들은 역사이며, 전설이며, 민주주의의 연대와 보편성을 실천한 영웅들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겁니다. 평화의 올리브 나무에 꽃이 필 때, 공화국 스페인 위에 승리의 월계관이 휘날릴 때 돌아오십시오! … 오늘도 내일도 애정과 감사로 가득한 스페인 사람들은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국제 여단의 영웅들 만세!”
- 돌로레스 이바루리(라 파시오나리아), 1938년 11월 1일 국제여단 환송회에서,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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