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당신

빗속에서의 대화

야우리 2019. 11. 24. 21:16


처음 가는 곳에서 처음 타는 버스를 탔다.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계속 쏟아졌고, 예정된 시간에서 10여분을 지체했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설마 버스가 오지 않을까, 신호 건너편을 기웃거리자 한 촌로가 정류장에 앉아 날 바라보며 넌지시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 여기가 서울 가는 버스 타는 곳 맞습니까?

- 맞아요. 강남 터미널 가는, 걱정하지 마세요. 백프로 옵니다.

55분 차를 예매했는데 10분 넘게 지체하네요. 보통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 예... KTX 역에서 좀 밀리기도 하고 오늘은 비도 오잖아요? 초행길은 항상 불안한 법입니다마는...

여기서 버스를 타는 건 처음이라서요.

- 인생은 항상 초행길이지요. 부모가 되는 것을 보세요, 한 사람이 자라는 것을 돕는 경험을 누가 여러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모든 부모들이 양육의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그것에 능숙할 것이다,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긴 합니다. 차라리 공식적으로 교육을 해야 할까봐요.

- 하하...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참조’할 수 있지요. 가깝게는 자신의 부모부터... 어떤 삶의 본보기 말입니다. 학생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어요?

한 때 있었지만... 근래에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삶의 사표로 삼고자 한다면 내 삶은 최상의 상태에서도 그 사표의 복제품 정도로 전락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실존적인 ‘내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인간이 그런 것, 선대의 사람을 ‘참조’하여 결단을 내리는 행위에서 자유로울수는 없겠지만 이젠 최대한 자유로워보고자 합니다.

- 그런가요? 좋습니다. 말씀대로 결정은 자신의 몫이지요. 학생이 생각이 많군요. 아 저기 버스가 옵니다. 잘 들어가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말의 힘은 어쩌면 내뱉어지는 순간의 그 '무게'에 있을 지도 모른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